연산군은 돈환형
글쓴이 : 박경식 올린날 : 2002-12-23 14:40;09
장녹수는 여종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양반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는데, 연산군을 부추겨 그들을 욕되기 하는 일에 비상한 머리를 발휘했다. 시중을 드는 예쁜 궁녀들을 찍어 몰래 연산군의 수청을 들게 할 뿐 아니라 남의 아내와 처녀, 기생 등을 마구잡이로 데려다가 임금의 수청을 들게 만들었다. 그 수가 무려 1만 명에 달해 나중에는 그들이 거처할 곳이나 생활하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였다. 연산군이 궁 밖으로 나가 한번 자면 수청을 들 사람만 무려 천 여명이 쫓아다녔다고 한다.
연산군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심지어 비구니가 살고 있는 사찰을 방문하여 한꺼번에 여러 명의 비구니를 상대로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연산군은 평상시 잠자리 밑에 뱀을 키워 정사를 한 후에는 그 뱀을 잡아먹기도 했다. 풍설에 다르면 연산군이 정사를 할 때 뱀이 그 밑에서 구경을 하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죽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자신의 큰아버지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부인을 평상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다가 친족상간을 하게 되는데, 그 후 박씨는 부끄럽고 원통하여 자결하게 된다.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날 때 가장 앞장 선 장수가 박씨의 동생인 박원종인 것을 보면 결국 아랫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요구와 친족상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끝내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은 의심도 많고 질투가 심해서 자신이 뺏은 신하 부인의 남편이 혹시 딴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의심한 나머지 입에 쇳조각을 물게 했다든지, 자기가 뺏은 첩이 자기에게 사랑이 약한 것이 옛날 서방 생각을 해서 그러나 싶어 서방을 잡아 죽은 적도 있다. 또 자기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기생을 보고 그의 남편 목을 베어다가 기생에게 주고 기생마저 죽여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생들에게는 연회에 참석하여 춤을 출 때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고, 임금인 자신도 춤을 추는 추태를 일삼았다. 역대 내시 중 가장 충신으로 알려진 김처선이 바른 말을 한다고 활을 쏘아 죽이고 칼로 찍고 혓바닥을 자른 후 그 시체를 호랑이에게 주기도 했다. 넓은 널빤지에 콩을 볶아 깔아 놓고 궁녀와 기생들에게 알몸으로 네 발로 기어다니며 먹게 하고, 임금인 자신은 수말이 되어 말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면 놀기도 했다. 그래서 연산군을 '말놈'이라고도 한다.

연산군의 관계에 대한 해명은 이렇다. 연산군의 주류적 무의식은 모성애의 욕구불만이 근간이 된다. 연산군이 4살 때 생모 윤씨가 궁에서 쫓겨났다. 즉 가장 애정 욕구가 빈발할 때 성격 형성에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끼 말이 어미 말을 부르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폭식을 한 것 등은 모정 결핍에 의한 것이다. 사슴이 달라붙는다고 배를 차는 것은 평소 억압되었던 공격성을 부왕 앞에서 터뜨렸던 것으로, 유아기의 애정과 공격성의 갈등이 극복되지 못할 때 외상적 경로로 심층에 남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원래 이상한 것이 아닌데, 이와 같은 갈등이 적절히 처리되지 못해서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원인은 어머니를 잃은 왕세자라 해서 궁중에서 모두 다 애처롭게 생각하고 그를 대했기 때문에 안하무인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우울병적 분열증이 되어버린 것이다. 환각과 망상에 사로잡혀 판단력의 상실자가 된 것이다.

사랑의 욕구불만과 공격성이 복종과 변태성향으로 변형되면서 처녀, 비구니, 처, 기생, 여종, 무당, 정경부인, 정부인, 숙부인, 백모, 누이동생 등 가릴 것 없이 그는 변태적 능욕을 다반사로 표출하였다. 그것도 부족해서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의 본남편까지 색출하여 처형과 귀양을 일삼았다. 그의 질투, 망상과 스트립쇼, 변태 행동 등 은 세인의 빈축과 혐오를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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