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은 카사노바형
글쓴이 : 박경식 올린날 : 2002-12-23 14:40;48
연산군의 변태성은 사디즘에서 보이리즘(Voyeelisiam), 스코포필라(Scopophilla) 즉 노출증이라는 퇴행적 행위와 친족상간 등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스코포필라나 친족상간은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오이디푸스 고착상태의 현상이다. 억압된 궁중 생활에 모성애의 욕구불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었기 때문에 원한과 공격이 잠재되었다가 변질도어 정치적 복수와 아울러 폭정으로 표출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돈환형은 어렸을 때 모자간의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하여 원한과 실망을 맛본 나머지 모든 여자에 대한 복수심이 호색으로 발산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것이다. 연산군은 아마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이 겹쳐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양녕대군은 카사노바형

연산군이 사디즘의 광적인 호색가였다면 양녕대군은 권위주의가 가진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여겼던 사람이다. 일찍이 왕위를 계승할 세자 자리에 있으면서도 양광적 호색을 과감히 자행하였으며, 세자 때 이미 쾌락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질적 인생의 보람을 즐기려 했던 호담무쌍한 호색가였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맏아들이요, 이태조의 손자였다. 그의 나이 13세 때 태종이 서울 안에 수재와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왕위를 왕세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위를 실행하려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일찍이 장래성을 보였다. 글도 잘 쓰고 말타기도 잘하는 등 재주가 늘어 다재다능하였으며, 남대문의 '숭례문'이라는 현판도 양녕대군이 직접 썼을 정도로 필적도 훌륭했다. 그러나 공부에 점차 취미가 멀어지고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동시에 여자에게 마음을 쏟았다.

양녕은 글도 잘 썼지만 무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대궐의 뜰 안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새들이 와서 쪼아먹자 태종이 활 잘 쏘는 사람이 있으면 새를 쏘았으면 했다. 이에 왕세자가 활을 쏘았는데, 새만 명중시키고 감은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활솜씨가 뛰어났다. 이 왕세자는 궁중이 상존의 전당이요, 궁중 안에는 굽실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성품이 곧고 총명하며 기질이 툭 트여서 사물에 기대지 않고 놀기 좋아하는 자유정신의 소유자인 왕세자는 장차 왕이 되기 위한 예법, 예절을 강요받자 불만을 느꼈다. 즉, 그에게 강요한 학문이 추상적이고 억압적인 지나친 인성교육에만 그쳤던 것에 지루해하여 학문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정서교육을 등한시한 교육에는 흥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싫증을 느꼈다. 그래서 왕세자는 그저 같이 놀던 기생들만을 떠올리고, 어떻게 하면 기생들과 밤을 지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게 되었다.

또, 왕세자는 부왕 태종이 왕권 쟁탈에서 형제를 죽였으며, 막대한 권력 상징의 장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심적 외상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왕세자로서 걸어가야 할 궁중 생활은 허위와 아부와 끈기와 예절로만 차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찾았고 권위 부리는 양반자제들을 접하기도 했다. 그래서 건달이나 여빈, 막공, 응상, 난봉꾼 같은 속인들까지 불러들여 놓기도 했다. 그들은 왕세자의 친구가 되어 오랫동안 사귀었으며, 서로 가식 없고 진실한 인간과 놀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왕세자는 궁중밖에는 별세계, 즉 인간미가 풍부하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자유천지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왕위에 오르면 인습에 얽매이고 문무백관이나 종친을 상대로 이상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왕실을 근거로 벼슬을 탐하고 영화와 잇속만을 노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갖게 되는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풀어버렸다. 즉, 행동의 탈선이 그것이었다. 부왕이 싫어하는 불경을 외우는 일, 양광 즉 미친척하는 것, 여색에 빠지는 등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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