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주도권
글쓴이 : 박경식 올린날 : 2002-12-23 14:43;11
하루는 왕세자 태종이 강무에 참석코자 평양 지방으로 떠날 때, 마땅히 성밖까지 나가 배성해야 함에도 왕세자는 복통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시흥 땅에서 미연을 동반하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남의 소실 어리의 머리채를 붙잡고 궁중으로 데려와 노래와 춤으로 날 새는 줄 모르고 놀았다. 왕세자는 왕위도 필요없고, 오직 자기 멋대로 어리와 같이 지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는 노래까지 지어부르게 되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수가 어린 내 사랑, 주야장천 녹농님이 술과 어리 내 사랑.'
양녕대군은 드디어 개성으로 쫓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뉘우치지 않고 흥청거리며 놀자 드디어 왕세자에서 폐위당했다. 그러나 양녕은 오히려 후련해했다. 양녕대군이 세자위에서 쫓겨나자 어리는 강원도 춘천으로 추방당했으며, 폐위된 양녕은 경기도 광주에서 감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녕은 담을 뛰어넘어 어리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기도 했다. 그런 예쁜 여자를 끼고 노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양녕대군은 충녕대군을 사랑하는 정도가 남달랐고, 그가 장차 성군이 될 인품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리를 아우인 충녕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양광적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왕위가 자기에게 올 줄 알고 공부를 하는 둘째(효령대군)에게 양녕이 몹시 핀잔을 주자 효령은 깨달은 바가 있어 스스로 중이 된다.

그 후 효령은 불심이 돈독해진 후, 형님을 위하여 공양을 드리려고 하니 참석해 달라는 청탁을 했다. 양녕은 기쁘게 생각하고 사냥꾼과 같이 노루와 산돼지와 술을 가지고 절에 들어간다.
효령이 마침 부처 앞에서 형님에 대한 호방사심을 고치게 해다라고 발언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양녕이 뜰 한가운데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에 대경실색한 효령은 야속하게 생각하면서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불법에 어긋난 일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책망 비슷하게 말하자, 양녕은 껄껄 웃으면서 내 팔자가 제일 편하다며 내가 살아서는 왕형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죽은 후에는 불형이 되니 내가 뭐가 거리낄 게 있느냐고 껄껄 웃어대자 동생도 그 말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적혀 있다.

양녕대군의 이와 같은 모든 행동들은 권위에 대한 회의, 궁중 생활에 대한 염증, 권모술수만이 난무하는 왕위에 대한 구속력, 그런 것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인간적인 갈등을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밤의 주도권

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의 정상 음경 길이는 7.4cm, 직경 2.6cm로, 발기 시에는 각 11.2cm, 4.1cm로 늘어난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축복이라고나 할까. 평상시 크기가 작은 사람은 발기가 되면 약 100% 정도 커지지만 성기가 큰 사람은 약 70% 정도밖에 커지지 않는다.
또한 여성에게 있어서 성감이 가장 예민한 곳은 질 입구로부터 3분의 1에 해당하므로, 꼭 성기가 커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남자의 성기가 크다고 해서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만족할 만한 쾌감을 주는 것은 아니고, 성적 쾌감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성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스스로 자신의 것이 작다고 비관하거나, 목욕탕에 가기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기도 한다. 성생활에 있어서 성 파트너인 여자가 성기가 작다고 빈정대거나 놀려댄다며 성기를 키울 수 없느냐고 찾아올 때 본인의 열등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생기학자들의 위로의 말로 간단히 해결될 것이며, 사소하게 여겨질 것인가. 자신의 성기가 작아서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성생활에 커다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람도 있고, 발기도 잘 되지 않거니와 사정이 되지 않거나 조루 현상까지 있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그의 부족한 성에 대한 지식의 보충만으로 해결되는 사람도 있으나, 아무리 성에 대한 지식을 심어 주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게 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심어 주어 자신감을 갖도록 해서 원만한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소원대로 해주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의사의 치료가 꼭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경륜을 갖춘 의사일지라도 자기의 병을 치료해주지 못하면 환자는 그 의사를 돌팔이라고 한다. 아무리 실력 없고 무능한 의사라 하더라도 자신의 병을 고쳐주면 그 의사는 명의가 된다. 따라서 명의와 돌팔이 의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옛날에도 병을 고치는 것은 삼등 의사요, 사람을 고치는 것은 이등 의사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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