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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병원을 얻고 개원을 하자 병원 간판을 어떻게 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남들처럼 비뇨기과니 의원이니 하는 식의 흔한 이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은 튀면서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어야겠는데, 막상 산뜻한 명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아쉬운 대로 '성의학 클리닉'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의료관계법으로는 '성의학'이니 '클리닉'이니 하는 말을 병원입구에 써 붙일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박 비뇨기과'니 '박경식 비뇨기과 의원' 정도면 괜찮지만 '성'이라는 말을 병원 간판에 올릴 수가 없었고, 클리닉 같이 알쏭달쏭한 말은 더욱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보건 행정을 맡았던 일선 공무원들도 그런 세세한 내용을 몰랐던지 내가 내건 '성의학 클리닉' 간판은 건재하였고, 환자들도 비뇨기과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적혀 있지 않은 이 간판 덕분에 병원 문을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병원 문을 연 첫 날, 환자 일곱 명이 찾아왔다. 다음 날은 열두 명이었고, 그 다음날은 열 다섯 명……. 환자가 의외로 많았다. 병원 문을 들어서는 남성 환자들도 우선 병원 간판에 대해 한마디씩 하였다.
"원장님, 병원 이름 한번 좋습니다. 비뇨기과라는 말을 썼으면 들어오기가 거북했을텐데요. '성의학 클리닉' 하니까 뭔가 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튼 병원 간판이 그럴듯해서 그랬던지, 내가 운이 좋아서 그랬던지, 환자 수는 나날이 늘어나 하루에 150명이 넘게 되었다. 대전만 해도 소문이 아주 빠른 도시인데, 그곳에서 새로 개업한 젊은 의사가 고개 숙인(?) 남자들을 단번에 고개를 번쩍 들게 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이 그렇게 되어 간 모양이었다.
어떤 병을 가진 환자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환자들은 의사 앞에 앉기만 하면 자기 증세를 보다 소상하게 설명하고 싶어하고 의사로부터 자상한 대답을 듣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 진료실의 경우 우선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고, 나도 약간은 자만해서 환자가 울상을 짓고 설명을 시작하면 사정없이 말허리를 자르게 되었다.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거기가 뻐근하고 일 시작할 때 안된다는 얘기 아닙니까? 자, 이쪽으로 와서 누우세요."
그러면서도 걱정이 많아졌다.
'내가 정말 성의학의 권위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한테 시술을 받고 간 환자가 잘못되면 어찌하나.'
결국 시간이 가면서 나는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다행히 그때까지 별 탈은 없었지만 더 이상 양 위주의 진료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진짜 의사라면 하루에 몇 사람을 보더라도 제대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의사로서 정말 성숙해지는 단계를 맞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환자 수를 대폭 줄여가며 질 위주의 진료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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