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jpg

 

   

부부란 무엇인가
글쓴이 : 박경식 올린날 : 2002-12-23 17:45;00
어느 날, 나에게서 음경해면체내 보형물 삽입수술을 시술 받은 50대 교사가 술에 잔뜩 취한 채 나를 찾아왔다. 그 분은 1년여 전부터 기질적 발기불능으로 진료를 받던 분으로, 약이나 주사를 약 6개월 정도 투여 받은 일이 있었다. 다소간의 호전은 있었지만 매번 필요할 때마다 발기시켜 주는 주사를 맞아야 된다는 불편함과, 자주 투여하다보니 효험이 예전만 못하다 하여 큰 맘 먹고 수백 만원을 들여서라도 결국 수술을 해야겠다며 1년 전에 수술을 받은 분이었다.

수술 후 생각보다 만족할만한 부부관계를 갖지 못한다고 불평했던 그였기에, 1년이 지난 어느 날 잔뜩 술에 취해서 나를 찾아왔을 때, 사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였다. 그 수술은 실패할 수도, 또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다. 기대한 만큼 효험이 적다는 것은 혹 여러 가지 사정상 환자 본인의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상담실로 들어와서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신가요?"
"수술은 참 기가 막히게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미안하지만 옛날에 제가 발기불능으로 치료했고, 근래에도 치료했었다는 진단서 좀 끊어주실 수 없습니까?"
"아니, 무슨 일이신데요?"
"선생님, 예전에 제가 발기불능이었죠?"
"예"
"지금도 발기불능이라고 써 주실 수 없나요?"
"수술을 해서 지금은 발기불능이 없는데,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는 오랜 망설임 끝에 긴 한숨과 함께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수술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에 왠지 모르게 집사람하고 만족스럽지가 못했습니다. 나는 정말 이대로 병신이 되는가, 수술 후에는 부부 관계가 안될 게 없다는데 다른 사람한테도 그럴 것인가, 나는 이제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하여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실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제 집사람한테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 집사람이……. 제가 지금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그분의 사모님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사모님도 나에게 치료받은 환자였으며, 또 이 수술로 말미암아 더욱더 잘 알게 되었던 분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입장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사모님을 설득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중재역을 자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그분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S대를 나온 문학도였다. 미끈한 얼굴에 우뚝한 코를 가진 그의 입에서 시라도 한 두 줄 읊어진다면 그에게 홀딱 반하지 않을 여성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원체 그 분은 다소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지만, 교육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다름 아닌 학부모와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그는 캬바레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전륜의 젊음을 불태우며 학교 수업과 가정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의 부인은 분노가 폭발했다. 몇 백만 원씩이나 하는 수술비를 위해서 빚을 냈건만, 수술 후에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그걸 밖에 나가서 쓰고 다녀? 승리의 축배를 준비해 두었더니 그걸 글세 나돌아다니며 남 좋은 일을 해주었단 말이지!

결국 사모님은 학교 교장이나 교육감을 찾아가 진정도 하고, 드디어는 그 수술을 한 나까지 고소하겠다고 덤벼들었다. 의사이셨던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 적이든 아군이든 환자는 가리지 말고 치료해주어야 된다는 정신에 입각해서 행동하다가 나중에 잠시나마 곤욕을 치렀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나까지 이런 곤욕을 치르게 될 줄이야.

그 후로 그분은 다른 학교로 전근 발령을 받았으나, 사모님은 퇴직시의 퇴직금으로 이 선생님이 딴 살림을 차리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경우에 나는 웃어야 좋을까, 울어야 좋을까.


▲ 다음글 : 가족이란 무엇인가
▼ 이전글 :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