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jpg

 

   

무기여 잘있거라
글쓴이 : 박경식 올린날 : 2002-12-23 17:52;19
1960년대 초만 해도 필리핀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였다. 이미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있었고, 국민 소득도 우리보다 훨씬 높아서 당시 그 나라 대통령의 부인인 이멜다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나라 기자가 당신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사느냐고 질문했던 것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필리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가수 양수경씨의 남편인 변대윤 사장과, 가수 김수희 씨와 함께였다. 비록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은 정말 살아가는 모습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195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간 우리 나라만 발전하고, 거꾸로 그 나라는 살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던지, 필리핀에서 머무는 3일 동안 한끼의 식사밖에 하지 못했다. 더러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필리핀의 최고급 특급호텔조차도 도대체 더러워서 잠을 자기가 싫었다.
평상시 동남아 여행을 다니는 사람을 보면 우리 나라에도 거지들이 많은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외국 거지들을 보러가나 했는데, 역시 내 생각이 옳았구나 싶었다. 온통 속이고 바가지씌우는 그들에게 몹시 불쾌하고 나쁜 감정만 갖고 돌아왔다.

내가 필리핀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나와 몹시 가까이 지내는 한 분이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병을 치료해도 낫질 않았다. 검사해 보면 특별히 나오는 것도 없는데 항상 몸이 피로하고 밥맛도, 의욕도 없었다. 또, 어떤 일에도 정신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욕도 떨어지고 부부관계도 시들해 사이가 안 좋아지고, 거기다 위장이나 간도 안 좋아서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아버님은 80이 넘었는데도 아직 정정하신데 그 아들되는 자신은 항상 몸이 이 모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병원 저 병원에 여러 번 입원도 해보았지만 입원해서 치료받을 때뿐이고, 퇴원해서 나오면 상태가 또 악화되었다. 나의 분야에서는 전립선과 이로 인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성 기능이 감소되는 것 외에는 다른 문제를 잡아낼 게 없어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분도 현대의학보다는 뭔가 좀 신비스럽고 극적인 방법을 찾아 어떻게든 나아보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의사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쥐 잡는 게 고양이듯 어떤 사람이 되었든 병 고치는 게 의사지 않느냐, 그리고 그 사람이야말로 명의가 아니냐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이 분 병만 고칠 수 있다면 굿판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 분이 어디서 들었는지 심령과학에 의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했다. 수소문 끝에 알아보니 한 때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김수희씨를 치료한 '짐라보'란 사람이었다.평소 그분과 가깝게 지내던 선배를 앞세워 가수 김수희씨, 변대윤사장 등과 함께 그분을 찾아갔다. 그 곳은 마닐라에서도 뚝 떨어진 바기오였는데, 기후가 나빠 비행기도 끊기고 폭우로 다리마저 끊겨 평상시 비행기로 40분이면 갈 거리를 무려 왕복 16시간을 소비하여 갔다.

나는 그 치료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을 느꼈다. 물론 바로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프로를 통해 모두 사기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사람이 그래도 치료사로서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무당이 굿을 한 후에 병을 낫게 하는 것과 똑같은 어떤 심리적인 효과를 갖고 병을 치료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의 치료과정은 너무도 신기했다. 환자의 몸에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손에서 피가 나오고, 몸의 나쁜 조직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자들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수술자국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것은 잠깐 사이에 다 이루어졌다. 나는 구경만 하려 했으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나 빼고 다 시술받는데 혼자 서 있기가 뭐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장난 삼아 시술대에 누웠다. 다만, 내 자신이 떠나기 전에 건강체크를 해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왔기에 당연히 그런 대답을 기대하면서.



▲ 다음글 :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 이전글 : 인삼농사 지어 정력제 사 먹이다니.